시청 15:30~15:40 ◦ 개회식 15:40~16:20 ◦ 공개 코칭 사례(문현중, 정이든) 강사: EBS <선생님이 달라 졌어요> 출연 교사 16:20~16:30 ◦ 휴 식 16:30~17:10 ◦ 공개 코칭 사례(한내초, 이은정) 17:10~17:50 ◦ 수업 개선 사례 질의 응담(정이든, 이은정) 17:50~18:00 ◦ 9월 공개강좌 안내 담당 연구사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문현중학교 교사 1 무엇이 달라지고 싶었는가 제가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임도 맡지 않았고, 중학교에서는 비교적 말을 잘 듣는다는 1학년을 가르쳤으니 힘들었다고 하면 조금 우 습기도 합니다. 저도 일단 임용에 합격한 것이 기뻤고, 1학기 때에는 아이들이 항상 예쁜 모습이어서 어깨춤을 추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맞는 2학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니 아이들은 ‘말 잘 듣는 순진한 초등학생’ 티를 벗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더군요.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하라고 말하면 아무 효과가 없었고, ‘아무 말 안하고 째려보기’ 등의 비법을 써서 교실이 조용해져도 1분을 채 못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제가 초반에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면서 화내는 척도 하고, 진짜 화를 내기도 하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아직 첫 해니까, 교직에 대한 회 의까지 느끼지는 않았지만, 뭔가 내가 좀더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에 응모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저 의 2011년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2 시작부터 1차 코칭까지-어렴풋이, 소통 2011년에 첫 담임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첫해에 저는 정식 교사가 아니라 거의 인 턴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담임도 처음인데 생활기록부와 차세대 나이스 업무를 맡아서 학교생활이 더더욱 정신이 없었고, 그 중요한 3월에 아이들과 다소 행정적인 관계만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사고 안 쳐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까지 했었지요. 그리 고 2010년과는 다른 고민이 생겼는데, 그것은 우리 반 아이들이 참 무기력하다는 것 이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조회 시간이건 수업 시간이건 내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뭔가 냉소적인 느낌이었지요. 그래서인지 1차 코칭 때 의외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요약하면 ‘아이들과 소통이 잘
저는 첫해 때 너무 아이들을 이해하고 수용해줘서 학생들이 떠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 지요. 그리고 나름대로 의욕을 갖고 수업이나 학급 운영에 임하는 편이라고 자평하고 있었고, 젊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이 좋아해주기도 했으니, 내가 아이들과 소통을 제 대로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던 거예요. 1차 코칭 후 그 사실을 받아들 이는 데에만 1주일쯤은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받은 1차 미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침,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화내지 않기 2. 교실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인사하기 3. ‘어린이들’이라는 말 쓰지 않기 4. 아이들에게 자기 고백하기 5. 학급 규칙 정하기 사실 이 미션을 받고도 처음에 저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답니다. ‘저 아침에 교 실 들어가서 인사하는데요?’ ‘저 학급 규칙 첫날 정했는데요?’ 애들마냥 이런 반항심 (?)을 조금 가졌더랬죠. 이 미션을 조금씩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렴풋하게 ‘아이들 에게 조금 마음을 터놓고 대하라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답니다. 미션들은 항상 그런 식이었어요. 무엇이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러이러하게 행 동해야 한다고 답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션을 실천하면서 자연 스럽게 깨닫게 해 주었지요. 작은 행동들이지만 아이들을 좀더 소중히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들게 되었습니다. 올해 아이들이 방송을 보고 나서 “선생님, 작년엔 애들한테 인사도 안 해줬어요?” 라고 물어보는데, 이 미션에서 말하는 인사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전체를 향해서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게 아니라요. 프로젝 트에 참여했던 다른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매일 아침 아이들을 안아주면서 인사를 하곤 했는데 저는 왠지 쑥스러워서 이 미션은 끝까지 그런 식으로 는 하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10분 일찍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안부를 묻는 정도로 변 형했고, 올해도 그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전문가들과 제작진이 요구한다고 해서 저의 원래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는 일을 하기를 좀 꺼렸던 것 같습니다. ‘억지로 무리하게 하면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를 계속 댔는데, 어떻게 보면 저는 껍질을 깨고 나오지는 못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작년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 반과 다른 반을 비교 하면서 깨달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정말 좋아해야 교사로서의 역할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써놓고 보니 너무 뻔한 말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학기 초부터
교사와 대화를 하려고 하고, 교사의 말에 집중한다는 비언어적 표현도 잘 해주고, 설명을 마치고 나면 질문 도 퍼붓는 분위기의 반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사람인지라 아이들이 그렇게 반응을 잘 해주니 더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우리 반에서는 쑥스럽기만 하던 간지러운 말들과 긍정적인 피드백이 그 반에서는 막 저절로 나오고요.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서 교육의 질이 달라지는 거라면 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지금도 종 종 하고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힘들었던 점이라면, 누군가가 계속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는 그 사실 자체였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카메라가 있을 때만 잘 하고, 사실은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워서, 카메라가 오는 날은 더 애들을 잡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방송하는 쪽에서 원하는, 바뀐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의식하기도 하고… 제가 참 남들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인 줄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는 제작진이 보는 나와, 진짜 나라는 사람이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겨 난 갈등도 있었어요. 워크샵이나 또 여러 일들을 지내면서 제작진이나 전문가들과도 좀더 소통이 좋아졌던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 드러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교사의 문제 점을 지적하고, 교사가 괴로워하면서 변하는 과정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따라 조금씩 달랐겠지만, 1차 미션을 시행하던 즈음에는 교사의 내면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것이겠지만, 학생과 교사의 만 남이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라면, 선생님이라는 사람 역시 내면까지 건강해야 한다는 관점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상담을 전공한 교수님과 개인 상담도 너댓 번 진행 했고, 여름 방학 때는 상담학회에서 진행하는 집단 상담에도 참여했습니다. 아이들만 큼이나 저의 내면, 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집중하게 되었던 시간이었 습니다. 3 여름방학과 2차 코칭-좀더 적극적으로 사실 여름방학 직전까지는 정말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그냥 쥐어짜면서 학교에 다 니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심하지 않은 사고가 나서, 딱 한 달만 학교를 쉬었으면 좋겠 다는 유치하고 못된 생각까지도 가끔 들 정도였습니다. 보통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면, ‘그래도 예쁜 애들 보면서 참아’라는 위로를 많이 듣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말도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이없게도, 회복의 기회는 방학이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할 즈음이 되니 갑자기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은데도요. 시간이 지나
‘바뀐’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는 압박이 좀 늦춰졌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힘을 조금 내고, 여름 방학 즈음에 2차 미션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장 욕심 을 내던 부분은 아무래도 수업이었기 때문에, 수업 위주로 많이 접근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2차 미션은 좀 많은데, 아래와 같은 것들이에요. <수업의 지배력 높이기> 1. 수업 첫 5분을 잡아라 : 선생님 들어오기 전에 자리에 앉아있기 2. 준비된 수업을 하라 : 수업의 흐름도 작성 3. 소란스러워진 시간 집중시키기 : 잔소리 멈추고 침묵하기, 분노하거나 울지 않기, 논리적으로 천천히 말하기 4. 상호 존중하기 :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질문 제대로 하기, 대답을 못했을 경우 격려하며 끌어내기 <학급에서 존중과 경계 세우기> 5. 학급의 정확한 규칙 제시 6. 개인상담하며 격려하기 <수업을 통해 자기와 대화하기> 7. 책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읽기 8. 수업일지 쓰기 9. 나 바라보기 : 수업 전에 웃는 얼굴 확인하고 들어가기 이때쯤에는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좀 강해보이고 아이들과 헤게모니 다툼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편하게 인간으로 대하자는 마음이 들 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교실에 들어갈 때의 마음이 많이 편해졌답니다. 그 렇지만 아이들이 막 저를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특별히 뭔가 가시적으로 달라진 것도 알기 어려워서 혹시 이건 단순히 자기만족이 아닌가 하는 자 책도 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문가 선생님들이 가정방문 등등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아이디 어를 내셨는데 역시 저는 혁명적으로는 실천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그룹으로 짜장면 이나 떡볶이를 먹으면서 그냥 대화하고 놀기, 가장 늦은 지각생을 집까지 데려다 주 면서 대화하기 등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 어떤 미션보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
합니다. 물론 2학기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업 시간에 너무 산만하고 버릇없이 굴기에 규칙대로 경고를 한 번 주고, 앞에 나와서 수 업을 들으라고 했더니 “앞으로 나와봤자 장난치기밖에 더하나?” 라고 큰 소리로 이야 기하는 학생이 있기도 했고, 촬영이 끝나고 기말고사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수업 시간 에 핸드폰을 쓰는 것을 지적했더니 시옷 자가 들어가는 욕을 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저도 속상한 일도 겪는, 현실 속의 교사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4 달라지고 있겠죠? 제가 ‘출연자’가 아닌 ‘시청자’이던 때,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저 선생님들은 올 해도 저렇게 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어요. 그 물음을 지금 제게 던지면 부끄럽기 만 합니다. 저는 아직 뭔가를 잘 하기보다는 자꾸 고민만 많은 사람입니다. 올해는 운좋게도 참 분위기 좋은 반을 만나서, 학교생활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점점 다른 반보다 질서가 없어지는 것도 같고, 버릇없는 아이들도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마 아닌 건 아니라고 경계를 세우는 데에는 아직 능숙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럴 때에는 오히려 ‘애들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을 가장 잘 듣는다’는 말에 힘을 얻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라는 제목에 거부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을 문제 있 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또 다른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달라지고 있어요’라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든, 다른 선생님들에게든 뭔가 멋지게 완성된 뭔가를 주기보다는 아직은 고민하고 이것저것 이야기해보고 시도해보려는 것 뿐이니까요.
1 들어가는 말 공개강좌 강사인 나는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참여자인 저경력 교사이다. 저경력 교사인 나의 공개강좌에 온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한다. 『선생님이 달라졌어요.』프로 그램에서 변화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에게 어떤 코칭을 받아 변화되었는지 말이다. 코칭 중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노력하려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의 변화가 다른 이들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다. 거기서 희망이 생겼다. 코칭에서 나만 못난 교사 아닌가 하는 좌절을 느끼고 있 었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현재의 나는 여전히 수업도 잘 못하고 아이들과도 삐그덕거린다. 그 럼에도 많은 사람 앞에서 나의 코칭과정이 도움이 될 거란 기대감으로 나서게 되었 다. 나의 용기있는 도전, 공개강좌가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2 신청 동기 2008년 3월 교단에 섰다. 처음은 학교의 한 해 과정에 쫓아가기 급급했다. 아이들과 첫 인사, 봄 운동회, 현장학습, 평가, 제출 공문에 치여 끌려 다녔다. 2년차 3학년 18 명 학생들과 나름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티커와 매의 효과를 보았 던 것 같다. 3년차 죽을 만큼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아팠으면, 출근길에 교통사 고 났으면, 그 아이가 안 왔으면 좋겠다. 방학 디데이를 두 달 전부터 생각하면서 ……. 아이들에게 폭력과 협박을 하지 않겠다며 1학기 매를 포기했고, 2학기 스티커를 포기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교사 대신 아이들 중에 왕이 생겼다. 왕의 횡포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아이들의 싸움이 학부모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 때 교사인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학부모의 항의와 관리자들의 질책과 책임
돌볼 여력도 없었다. 이렇게 할 거라면 교사를 그만 두자고 생각했다. 2010년 2월, <학교란 무엇인가>를 시청하다가 『선생님이 달라졌어요.』교사 모집 공고를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달라질 수 있다?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불 행한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3 코칭 과정 사람들은 방송을 보면서 “언제 어떤 계기로 바뀐거지?”라고 의문을 가졌다. 방송에 서는 교사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중요한 코칭 부분들을 편집했다. 또한 나의 좌절과 포기의 기간이 길었기에 시청자들의 비난을 덜 받게 해주기 위함도 있었던 듯 하다. 전문가와 제작진은 처음에는 나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변화가 빠를 것이라 기 대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아 이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와서 말을 걸고 웃었다. 그러니 관계가 금방 좋아질 거라 여 겼던 것이다. 그러나 1학기 동안 더욱 악화되어 2학기 10월말까지 촬영을 하였다. 전 문가와 제작진은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 회의적인 때도 있었다고 했다. 코칭 과정은 2말부터 10월 말까지 8개월이다. 촬영은 보통 한 달에 2-4회, 촬영은 아침활동부터 수업 후 인터뷰까지 하루 종일이다. 2월 사전인터뷰를 통해 나의 신청계기, 힘들어하는 점을 제작진과 이야기했다. 3월 개학 초 촬영과 말에 4분할 촬영을 하였다. 4분할 촬영은 아침 8시부터 수업 후 인터뷰까지 오후 5시까지 했다. 4월 5일 쯤 전문가 코칭이 시작되었다. 전문가들과 함께 4분할 영상을 보고 분석했 다. 촬영할 때는 아이들이 난장판이라 분석할 때 아이들만 보일 줄 알았는데, 4분할 영상을 보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쉬는 시간과 다른 수업시간의 내 표정 과 말투는 너무 억압적인데 비해 아이들은 혼란상태, 멀티미디어에 빠져 상호작용이 없는 적막한 수업을 직면하니 피하고 싶었다. 그 후 전문가들은 나에게 통제만 남은 교실, 상호작용이 없는 수업을 이야기하고 나의 상처도 어루만져주었다. 전문가 코칭 일주일 후 1차 미션(아침인사하기, 중앙책상치우기, 전날 아침활동 칠판에 적기, 동화 책 함께 읽기, 집중신호 1개 약속하고 사용하기)이 도착했다. 받자마자 “왜 이렇게 많 아!”라며 탄성이 나왔다. 내가 원하던 미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조용하고 내
생각해 보면 대구 박소형 선생님처 럼 손가락 하나에 아이들이 움직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미션 중에 하고 싶은 것만 골 라하고 미션일지도 적지 않았다. 중앙책상도 제작진이 치워준다고 해서 치우고, 아침 인사도 몇 번 하고 안 하고, 동화책은 왜 읽으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 안 했다. 온전히 한 것은 칠판에 아침활동 적기였다. 교직생활 중에 주변에서 듣던 조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듣던 조언은 통 제였다. 매, 표정, 스티커 등 다양한 통제였는데 이건 뭔 소리인가 싶어 전문가를 믿 지 않았다. 4월 말 촬영 변화될 리가 없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5월 초 서길원 교장선생님으로부터의 선물과 편지가 왔다. 편지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라는 메시지와 응원이었다. 선물은 즉석촬영카메라이다. 아이들과 그날 하루 즐거운 일을 기념하라는 의미로 사진찍기를 권했다. 이런 편지와 선물을 받으면 보통 “야호! 신난다.” 이러는데 나는 ‘미운 놈 떡 하나를 어떻게 더 줘? 싫은데 어떻게 예 뻐해? 카메라는 비싼거네.’ 무기력과 반항심이 있었다. 무기력은 내가 해서 변하겠냐 는 마음으로 표현되었고, 반항은 아이들을 바꾸는 기술을 알려 달랬더니 나만 비난한 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20일 쯤 7명 교사와 전문가와 함께 1차 세미나를 가졌다. 광주교대 총장 강연, 신을진 교수님의 집단상담, 서길원 교장 선생님의 관계(존중과 경계)강연이다. 집단상담 동안 다른 선생님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행동에 과거기억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대인관계는 사회생활에서 뿐 아니라. 교실 속 아이들과의 관계에 서도 똑같다는 것을. <존중과 경계>가 나를 힘들게 하기 시작했다. 존중하면서 경계 를 세우라니, 이건 통제와 다른 거라고 했다. 내가 하면 통제고 다른 사람이 하면 경 계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까지 경계하라는 것인지 이해하 지 못했다. 조용하길 원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통제기제를 버리라니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6월 제작진은 내가 혼자 해내라는 의미로 1차 수정 미션(일주일에 2번 이상 운동하기, 아침인사, 집중신호, 동화책읽기)을 주고 3주 정도 연락도 없고 촬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그 때 통제를 놓지 못하고 매까지 들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소리 지르기는 기본, 무시하기, 공개적 망신주기 등으로 존중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우리 반에 한 달 에 2번 발작하는 ADHD 학생으로 진이 빠져 있었고 그 아이의 등을 때리는 순간 촬
코칭을 받을 자격이 없기도 하고 코칭이 너무 힘들어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제작진에게 전화해서 포기선언을 하였 다. 나는 전문가와 제작진마저 3년차에 겪은 학부모, 동료교사처럼 나를 비난하고 있 다고 여겼다. 무슨 말도 조언이 아니라 비난이므로 눈물만 흘렀다. 방송을 보면, 내가 매 번 울어서 전문가들이 나쁘게 대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주셨다. 다만, 나는 그 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행동을 수정하라는 것은 모두 비난으로 느꼈으니까. 7월 초 2차 세미나 참여 후 8월 초 6박 7일 게슈탈트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집단상 담은 30명이 6박 7일 동안 식사를 제외한 시간동안 큰 방에 둥글게 앉아 현재의 감정 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과거를 서술하지 않고 감정언어를 사용하다보면, 나는 그 시점으로 돌아가 생생하게 다시 겪고 있게 된다. 그 당시의 상처와 아픔을 다시 겪으며 주위 사람들의 충분한 위로와 사랑으로 이겨내게 된다. 또한 평소에 겪 는 문제의 양상이 비슷함을 알게 되고 근본적인 원인 치료도 가능해진다. 나는 평소 우울해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안 가정에서 충분한 사 랑과 격려를 받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생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나에게 채직 질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의 오열과 무의식의 상태에 가고 역할인 형을 통해 내 감정의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받았다. 나는 1학기 내내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감정 폭발과 울음, 자책으로 일관해 왔었 다. 현재의 감정을 깨닫는 여유가 생기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내가 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였다. 이후 9-10월 1주일에 1번 신을 진 교수님과 3-4시간동안 개인 상담을 받았다. 가정,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대화했다. 나는 you 메시지를 많이 쓴다. 그 이유도 어릴 적 가정환경에서 배우지 못함을 알게 되어 나를 비난하지 않고 I메세지 방법을 수용할 수 있었다. ‘상대방 감정 수용 후 의 사 전달’ 은 아이들과 대화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업 중에 누가 미운지, 아이의 행동의 원인과 해결방법도 논의했다. 신을진 교수님는 교육 심리 및 상담가였기 때문 에 수업 구조, 진행, 학생들이 배움이 일어나는 시기 등 다양한 교육 상담도 받았다. 두 번 째 계기는 여기다. 나의 장점을 인정받고 힘들 것을 공유하니,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겼다. 한층 여유를 갖게 되었다. 9월 정유진 선생님과 신을진 교수님은 1학기에 직접 오셔서 수업 분석 및 노하우를 알려주었는데, 정유진 선생님은 자신의 수학수업을 찍어서 수업 전체적인 흐름을 알
조절 방법, 아이들과 신뢰 관계 만 드는 방법,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위로와 격려를 담은 동영상을 받았다. 서길원 교장 선생님이 9월 중순에 내려와 존중과 경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10월 나는 강력한 처방을 받았다. 나의 마음은 치유가 되 가고 있었는데 나의 더딘 속도는 방송 스케쥴에 맞지 않았다. 마음의 치유가 되고 있을 뿐, 교실에서 미션 수행 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고 미션일지도 쓰지 않고 있었기에 변화된 모습을 찾기 어 려웠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전문가와 제작진은 나에게 강한 의 지와 결과가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담당 PD는 밤 12시가 넘게까지 교실에 함께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게 용기를 주 었다. 2차 미션을 큰 종이에 직접 써서 교실에 붙였다. 검은 천으로 TV를 덮었다. 미 션은 ①눈 맞추며 아침인사하기 ②팔짱 끼지 않기 ③칠판에 기대지 않기 ④수업 시작 전 5초 동안 거울 보며 웃기 ⑤동화책 함께 읽기 ⑥일주일 분량 수업준비하기 ⑦다음 날 수업준비하기 ⑧아이스크림 쓰지 않기 ⑨집중구호 1개 사용하기 등이다. 미션일지 는 세세한 구분이 되어 있어 기록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남은 3주를 미친 듯이 했다. 잘 되지 않은 날도 좌절하지 않고 자책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내 가 변하니 아이들이 변했다. 아이들이 내 옆에 와서 힘이 되었다. 거울보며 웃을 때도 웃겨 주었다. 동화책 읽을 때도 함께 들어주고 호흡하였다. 부정적인 시선이 아니라, 아이들의 장점을 칭찬해주었다. 4 코칭 결과 아이들은 여전히 말대꾸도 하고 몸싸움, 욕도 하고, 내가 맞기도 했다. ADHD 아이 는 공격적이고 자살시도도 했다. 그런데 나의 감정이 널뛰기 되지 않았다. 차분히 상 황을 보고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할 의지도 생겼다. 나는 “할 수 있는게 없어.”가 아니라 “하면 되지.”를 깨달았다. 아이들과의 관 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업 준비도 재미있어졌다. 준비하면 아이들이 나에게 집 중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을 컵으로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물이 가득 차있어서 조금만 더 부었거나 건드리면 넘쳤었다. 그러나 이제 물은 반으로 줄었다. 주변의 자극에 민감함이 줄었
해결 방법을 이성적으로 모색 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들이 나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냈을 때 마음을 열 수 있었 다. 나의 장점을 칭찬해 주니 힘이 생겼다. 거기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제 시해 주니, 교실 속에서 행복해졌다. 관계 중심 교육은 사건별로 해결이 아니라 근본 적인 방법이었다. 5 나오는 말 올해 다시 5학년 2반 같은 교실을 사용한다. 존중과 경계를 무척 많이 생각하고 시 작한 첫 만남이었다. 모두를 위한 규칙을 함께 정하고 벌이 아닌 반성 위주의 규칙을 정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아이의 말을 듣고 이유를 들은 후 스스로 해결 할 수 있게 조언한다. 경계는 교실 속에서 살아가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행 동일 때 엄하게 세운다. 수업 준비도 한 단원씩 미리 보고 준비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미리 제시하고 안내한다. 수업시간에 농담도 많이 하고 웃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 그도 해 본다. 아이들은 내가 말할 때 귀기울여 준다. 내가 좋다고 한다. 고맙고 사랑 하는 우리반이다. 아이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준 사랑의 몇 갑절 더 사랑해준다. 아이들은 내 편이다.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문가와 제작진의 격려와지지 덕분이다. 올해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학년 선생님들 덕분이다. 동학년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해 준다. 수업자료도 공유하고 업무도 돕고, 아이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방법도 제시한다. 감정이 안 좋을 때 바로 의지할 수 있는 동학년이 있어 힘이 난다. 학교 밖 에서는 교사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함께 강연도 듣고 책도 읽는다. 내가 성장하고 있 음을 느낀다. 내가 교사임이 행복하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 안의 스트레스 가 작아야 사소한 일에 화가 나지 않는다. 자신의 순간 감정을 깨닫고 상대방 감정을 이해하고 대화하면 관계가 형성된다. 아이가 평소에 사랑 받음을 느끼면 교사가 감정 과잉을 보일 때에도 참고 들어준다. 아이가 교사를 이해해준다. 나는 항상 행복하려고 노력한다.